[천자 칼럼] 우크라이나의 고려인

입력 2022-03-20 17:39   수정 2022-03-21 00:06

“국장(國章·국가 상징 표장)에 ‘닭’이 있는 국가가 ‘삼지창’이 있는 국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항전 영웅’인 비탈리 김 미콜라이우주(州) 지사(41)가 매일 동영상으로 전황을 올리며 외치는 문구다. 고려인 4세인 그는 러시아 국장의 독수리를 ‘닭’에 비유하며 우크라이나 국장의 삼지창으로 이를 격퇴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인 미콜라이우는 김 지사가 지휘하는 강력한 방어로 러시아 공세를 3주째 막아내고 있다. 그는 1930년대 소련의 강제 이주 때 이곳으로 옮겨온 고려인 후손이다.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하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다 2020년 주지사가 됐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그를 ‘우크라이나 차세대 지도자’로 지목했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지난 6일 숨진 배우 파샤 리(33)도 고려인 후예다. 우크라이나의 배우·가수·진행자로 인기를 끈 그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 국토방위군에 입대해 민간인 대피를 돕던 중 전사했다. 그는 죽기 전 방탄조끼를 한 아이에게 벗어줬다. 인스타그램에 폭격 피해 모습을 올린 그의 게시물엔 추모 댓글이 수천 개 달렸다.

고려인이 우크라이나에 거주한 것은 딱 100년 전인 1922년부터다. 1926년 100명을 넘어선 고려인은 2001년 1만2700여 명으로 늘었다. 2014년 크름(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3000여 명이 러시아로 편입되기도 했다. 지금은 약 3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에는 겐나지 윤 키이우항공대 교수와 경제학자 겐나지 남, 예비역 중령 콘스탄틴 심 등 성공한 사람이 많다. 알렉산드르 신은 인구 80만 명의 자포리자 시장을 지냈다. 이들은 매년 고려인 문화예술축제 ‘코레야다’를 개최하며 ‘아리랑’과 K팝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전쟁으로 잔치는 끝났고 이산가족이 늘어났다. 우크라이나 국적 아버지와 러시아 출신 어머니를 둔 자녀, 양국에 떨어져 살던 형제들의 사연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한국의 경기 안산 땟골마을과 광주광역시 등에 거주하는 고려인들 마음도 새카맣게 탄다.

러시아 측 공세가 ‘닭’의 부리에 그칠지, ‘독수리’의 발톱만큼 강할지 속단하긴 이르다. 우크라이나의 ‘삼지창’이 이를 얼마나 잘 막아낼지도 알 수 없다. 그 사이로 가족을 잃고 포화 속을 헤매는 고려인 후손들의 슬픔이 깊어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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